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궤양성 대장염으로 시작된 37일의 병원 생활 (1)

  혈변으로 시작된 응급실과 2차 병원 입원 기록 30여 년 전, 저는 갑작스러운 혈변으로 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때는 단순한 복통이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진단을 받게 되었고 급성 신부전, 혈압 상승, 간 수치 상승, 패혈증 등 여러 합병증을 겪었습니다. 오늘은 병명을 알기 전, 병원 생활이 시작되었던 첫 번째 이야기를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혈변으로 찾은 2차 병원 응급실 병원에 가기 전날은 배가 조금 살살 아픈 정도였습니다. 밤새 통증이 계속되기는 했지만 참을 만했습니다. 마침 그날은 남편도 운전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고, 어린아이들만 집에 두고 갈 수도 없어 아침이 오기만 기다렸습니다. 밤새 화장실을 계속 오가다 보니 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아침이 되자 잠들어 있던 남편을 깨워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병원을 일찍 찾은 이유는 혈변을 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응급실에서는 처음에 치질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지금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환자는 병명을 몰라도 자신의 몸이 평소와 다르다는 사실만큼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사에게 증상을 설명할 때는 환자의 이야기를 조금 더 자세히 들어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결국 원인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점점 나빠지는 몸 상태 정확한 원인을 찾기 위해 입원을 하게 되었고, 하루에도 수없이 화장실을 오가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병실은 6인실이었습니다. 간병하는 가족들과 환자들로 병실은 늘 분주했습니다. 하지만 제 몸은 점점 더 나빠졌습니다. 배는 더 아파졌고, 화장실을 가는 횟수도 많아져 혼자서는 생활하기 어려운 상태가 되었습니다. 남편은 휴가를 내어 간병을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더 큰 걱정은 어린아이들이었습니다. 시댁도 친정도 사정이 있어 아이들을 맡길 수 없었고, 결국 동생이 모든 것을 맡아 주었습니다. 동생에게도 아이 둘과 가정이 있었지만, 작은 집에서 네 명의 아이들을...

39년의 월급명세서를 정리하며 떠오른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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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년의 월급명세서를 버리지 못했던 이유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받은 월급명세서를 퇴직한 뒤에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39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몇 년 전, 마침내 그 월급명세서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 장 한 장 꺼내 들었지만 오래도록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종이는 누렇게 바래 있었지만 쉽게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종이 한 장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우리 가족이 살아온 시간과 남편의 수고, 그리고 나의 젊은 날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월급명세서를 바라보고 있으니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있습니다. 바로 전세로 이사했던 그 집입니다. 작은딸 백일날, 집을 구하러 다녔던 하루 도시의 끝에서 또 다른 끝으로 발령이 나면서 급하게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마음이 급하니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 하루 종일 집을 보러 다녔지만 가진 돈으로는 마땅한 집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날은 반드시 집을 결정해야 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지만 밥맛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삼키며 겨우 한 끼를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은 사랑하는 작은딸의 백일이었습니다. 백일상은커녕 하루 종일 아이를 업고 집을 보러 다녀야 했습니다.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식당에서 눈물을 흘리며 밥을 먹고 있는 나를 주인아저씨가 바라보셨던 모습도 아직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아이에게 젖을 먹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오래 남은 침묵 전세 계약을 하려는데 돈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시댁에서 150만 원을 빌려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오늘이 아이 백일이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지만 아무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서운함보다 살아가는 일이 더 급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회고를 쓰며 다시 떠올려 보니, 그날의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마음에 남습니다. 산 위 마지막...

39년 동안 모아둔 것을 정리하며 나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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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를 돌아보는 시간 살다 보면 버리지 못하고 켜켜이 쌓아온 것들이 있습니다. 39년 만에 그것들을 하나씩 정리하면서, 나는 비로소 나를 위한 삶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을 쓰려고 했을까? 시작은 나의 어떤 모습으로 해야할지? 나의 삶에는 지난날을 돌아보며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정말 많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글을 쓰려고 하니 머릿속이 하얘졌습니다. 마치 머리 위에 무거운 무엇인가를 올려둔 것처럼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괜찮아질까.' 그렇게 네 시간 가까이 지나도록 같은 상태였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수많은 일상과 힘들었던 기억들이 내 안에 켜켜이 쌓여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래서 하나를 꺼내려면 그 위에 쌓인 시간들을 하나씩 내려놓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9년 동안 모아두었던 것들 39년 만에 그동안 모아두었던 것들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정확한 숫자는 모르지만 정말 많은 통장을 있었습니다. 분명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아두었던 이유가 있었겠지요. 버릴 것은 과감하게 버리기도 했지만, 어떤 것들은 끝내 버리지 못했습니다. 은행 통장들. 월급명세서. 아이들이 보낸 편지. 어버이날 달아주던 종이 카네이션. 아이들을 임신했을 때 받았던 산모수첩까지. 그것들은 모두 나의 작은 보물상자 안에 차곡차곡 들어 있었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왜 통장들과, 월급명세서를 버리지 못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누군가에게는 그냥 종이 일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우리 가족이 살아온 시간 그 자체였습니다. 그 종이에는 돈이 적혀 있었던 것이 아니라, 남편이 우리 가족을 위해 살아온 수고의 시간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떠난 뒤를 생각하다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내가 죽고 나면 어떻게 될까.' 이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코로나였습니다. 코로나의 끝 무렵 가족들에게서 나에게 병이 옮겨왔고, 혼자 아픈 시간을 보내면서 많...

엄마가 아프던 날, 베란다 토마토가 28개월 아기를 웃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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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개월 아기를 키우다 보면 매일매일 이 새롭 다. 아기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때론 어른보다 더 깊은 감정을 보여줄 때가 있다. 그리고 그 눈물을 멈추게 한 건 다름 아닌 베란다의 작은 토마토였다. 아기의 감정은 참 신묘한 부분이 있다. 어제는 아기 엄마가 많이 아파서 우리 집에 왔기에, 누워 있는 엄마 옆에서 나는 아기와 놀아주었다.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아 결국 외삼촌과 함께 응급실로 가게 되었다. 그때였다. 28개월 아기는 엄마가 병원에 간다는 말을 듣고도 큰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그냥 조용히, 닭똥 같은 눈물을 줄줄 흘렸다. 너무 슬플 때 나오는 그런 눈물이었다. "왜 울어?" "엄마가 아파서." 짧은 한마디였지만 그 말이 얼마나 마음에 걸리던지. 아기의 마음은 어떠했을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토마토가 아기를 구했다 어린이집에서 가지고 온 모종으로 맺힌 토마 울길래 나는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려야겠다 싶었다. 마침 베란다에 토마토가 빨갛게 익어가고 있었다.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가져온 방울토마토를 키운 것이다. "토마토 보러 가자!" 아기는 눈물을 뚝 그치고 베란다로 달려갔다. "빨간 토마토, 노란 토마토, 초록 토마토!" 신이 나서 돌아다니다가 빨간 토마토를 손으로 톡 건드렸다. 그랬더니 토마토가 툭 떨어졌다. 아기는 떨어진 토마토를 손에 들고 멀뚱히 서 있었다. "먹을래?" 하고 물었더니 아무 대답이 없었다. 아기는 과일이라면 뭐든 좋아하는데 토마토만큼은 채소인 줄 아는지 유독 싫어한다. "그럼 아빠 드리자." 그랬더니 아빠도 싫어한다고 했다. 결국 토마토는 잠시 내려놓고 저녁을 먹기로 했다. "할머니, 토마토 씨는 어떻게 해야 돼?" 저녁을 먹고 나면 항상 과일 먹는 시간이 있다. 어김없이 과일 타임이 왔고 참외 씨를 빼서 아기에게 주었다. 냠냠 맛있게 먹다가 문득 아까 그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