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년의 월급명세서를 정리하며 떠오른 기억

 

39년의 월급명세서를 버리지 못했던 이유

30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며 받은 월급명세서를 퇴직한 뒤에도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덧 39년이라는 세월이 지났습니다.

몇 년 전, 마침내 그 월급명세서들을 정리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한 장 한 장 꺼내 들었지만 오래도록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종이는 누렇게 바래 있었지만 쉽게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래된 종이 한 장일지 모르지만, 나에게는 우리 가족이 살아온 시간과 남편의 수고, 그리고 나의 젊은 날이 담겨 있었기 때문입니다.

월급명세서를 바라보고 있으니 가장 먼저 떠오른 곳이 있습니다.

바로 전세로 이사했던 그 집입니다.


작은딸 백일날, 집을 구하러 다녔던 하루

도시의 끝에서 또 다른 끝으로 발령이 나면서 급하게 이사를 해야 했습니다.

마음이 급하니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며칠 동안 하루 종일 집을 보러 다녔지만 가진 돈으로는 마땅한 집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 날은 반드시 집을 결정해야 했습니다.

늦은 점심을 먹으러 들어갔지만 밥맛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눈물을 삼키며 겨우 한 끼를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그날은 사랑하는 작은딸의 백일이었습니다.

백일상은커녕 하루 종일 아이를 업고 집을 보러 다녀야 했습니다.

지금도 그날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미안한 마음이 듭니다.

식당에서 눈물을 흘리며 밥을 먹고 있는 나를 주인아저씨가 바라보셨던 모습도 아직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도 밥은 먹어야 했습니다.

그래야 아이에게 젖을 먹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음속에 오래 남은 침묵

전세 계약을 하려는데 돈이 부족했습니다.

결국 시댁에서 150만 원을 빌려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오늘이 아이 백일이라고 조심스럽게 말씀드렸지만 아무도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때는 서운함보다 살아가는 일이 더 급했습니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회고를 쓰며 다시 떠올려 보니, 그날의 침묵이 오히려 더 크게 마음에 남습니다.


산 위 마지막 집에서 살았던 시간

이사한 집은 산 위 마지막 집이었습니다.

우리 집 위에는 작은 사찰 하나만 있었습니다.

물은 아래 집 물탱크가 모두 채워진 뒤에야 우리 집으로 올라왔기에 늘 물 걱정을 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그때는 그런 생활을 처음 해 보는 것이어서 그것이 얼마나 불편한 일인지도 몰랐습니다.

어떤 날은 빨랫감을 들고 형님 집까지 가서 세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작은 기쁨도 있었습니다.

봄이 되면 산에서 쑥을 캐며 생활비를 조금이라도 아껴 보려고 했습니다.

돌아보면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또한 지금의 나를 만들어 준 소중한 삶의 일부였습니다.


월급날은 우리 가족의 작은 축제였습니다

월급명세서를 받아 오는 날이면 마음은 늘 무거웠습니다.

통장으로 들어오는 돈은 넉넉하지 않았고, 생활은 늘 빠듯했습니다.

하지만 월급날만큼은 달랐습니다.

남편의 한 달 수고를 위로하고 싶었습니다.

맥주를 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음료수를 사고, 평소보다 조금 넉넉하게 반찬을 만들었습니다.

그날 하루만큼은 모두가 웃으며 한 달의 고생을 위로했습니다.

남편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었고, 나는 늘 조용히 들어주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시간이 참 오래 이어졌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것이 우리 가족을 버티게 해 준 작은 힘이었습니다.


엄마가 해 줄 수 있었던 것은 책이었습니다

생활은 어려웠지만 큰딸에게만큼은 책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계몽사 전집을 사 주고, 남포문고와 문우당에 가서 책을 사 주곤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큰딸이 웃으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는 책은 많이 사주셨는데 하루에 한 권만 읽으라고 해서 너무 슬펐어요."

나는 웃었지만 마음 한편이 먹먹했습니다.

아이는 결국 이불속에 숨어 몰래 여러 권을 읽었다고 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나 역시 그 시절 아이의 마음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종이는 버렸지만 삶은 버리지 않았습니다



퇴직까지 31년 모아둔 월급명세서,
정리하려고 보니 퇴직 후 9년을 더 보관하고 있었네요.


사람들은 가끔 제게 말합니다.

"언니는 머릿속에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어서 더 이상 들어갈 자리가 없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회고를 쓰며 조금은 알 것 같았습니다.

39년 동안 모아 두었던 월급명세서를 정리한 것은 종이를 버린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안에 담겨 있던 기억을 다시 꺼내 보고, 마음속에 오래 머물던 시간을 천천히 돌아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어떤 기억은 아직도 눈물을 부르고, 어떤 기억은 이제야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종이는 제 손을 떠났지만, 그 안에 담겨 있던 삶은 오래도록 제 마음속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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